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10주기, 여성혐오범죄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는 정부의 경이로운 무능에 부쳐
광주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여학생을 무참히 살해한 24세 남성 장윤기가 범행 직전 스토킹과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장윤기가 흉기를 구매하고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던 ‘범행 이틀 전’은 스토킹 신고가 접수된 날이었고, 스토킹·성폭행 피해자는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 자신을 지키고자 했다. 칼을 들고 도심을 배회했지만 피해자를 찾지 못했던 가해자는 결국 일면식도 없던 여학생을 살해했다.
한 여성을 스토킹하고 성폭행했던 남성이 길을 가던 다른 여성을 살해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동기가 없는 범죄도 아니다. 묻지마 범죄는 더더욱 아니다. 이는 자신을 ‘감히’ 거절하고 심지어는 경찰에 신고까지 한 여성을 향한 분노와 보복심, 통제욕이 여성 집단 전체를 향한 맹목적인 혐오로 발현된 결과다.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를 매개로, 집단에 속한 불특정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전형적인 테러 행위다. 즉, 이 사건은 명확한 여성혐오범죄이자 여성을 표적으로 삼은 테러범죄다. 이는 가해자가 스토킹과 성폭행에 관해 무혐의 처분이나 무죄 판결을 받는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다.
여성을 향한 혐오는 흐르고 분노는 전이된다. 당장 죽이고 싶은 한 여성을 눈 앞에서 놓친 남성은 결국 앞날이 창창한, 애꿎은 여학생을 향해 추악한 분노와 파괴욕을 쏟아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다며 반성 없는 태도를 보이는 가해자 대신, 어디론가 도망쳐 살아남은 또 다른 피해자는 고통스러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테다. 가해자는 사실상 두 명의 여성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경찰 역시 이 처절한 죽음에 일조했다. 교제폭력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오고, 스토킹을 당한 끝에 살해당한 여성들이 수없이 많았음에도 경찰의 대응 체계는 여전히 형편 없는 수준이다.
이는 전적으로 여성폭력을 철저히 외면하고 후순위로 미뤄온 정부의 책임이다. 정부는 여전히 “여성폭력은 맞지만 혐오범죄는 아니”라는 식으로 해당 사건이 여성혐오범죄임을 부정하고 있다. 여성혐오범죄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를 드러내면서 유사 범죄에 대응하겠다고 말하는 정부의 자신감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10년이 흐르는 동안 정부가 최소 여성혐오가 무엇인지라도 이해하고자 했다면, 적어도 오늘의 수치는 면했을 것이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은 되풀이 되고 있다. 정부의 호기로운 선언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유사 사건은 반드시 되풀이될 것이다. 정부가 지난 10년 동안 그랬듯이, 범죄의 본질을 외면하고 계속해서 무용한 대책만을 강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면식 없는 여성을 향한 폭행과 살인을 여성테러범죄로 명확히 규정하고, 그에 합당한 수사 체계와 양형 기준, 예방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여성들은 계속해서 외칠 것이다. 재작년 법원이 진주 편의점 여성혐오 폭행사건 가해자의 ‘여성혐오 동기’를 인정하고 판결문에 적시했듯, 오랜 기간 싸워야만 얻어낼 수 있는 소중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한 걸음도 망설이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여성의당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고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겪은 모든 피해자의 곁을 지켜내겠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일회적으로 분노와 애도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여성테러의 본질을 묻고 국가의 책임을 끈질기게 추궁하겠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 개정을 통해 여성테러범죄를 유형화하고, 그에 알맞은 재발 방지 대책과 피해자 지원 체계를 마련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