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이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살인죄로 처벌한 1심 판결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수술을 집도한 의료진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죄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에게는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의료진에게는 형사책임을 묻는 모순을 드러냈습니다. 임신중지를 진행한 의료진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현실이 계속된다면, 안전한 임신중지를 제공하려는 의료인은 더욱 줄어들 것이고 그 피해는 결국 여성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부는 해당 의료진에 대해 "살인은 절대적 가치인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는 범죄로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여성의 건강권과 의료접근권을 침해하는 결정입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기본적인 의료 환경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임신중지약인 미프진조차 아직 도입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국가는 국민에게 안전한 의료 접근권을 보장할 필수적인 제도와 의료체계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형사처벌만 앞세우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국가의 직무유기와 무책임입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국회와 정부에 후속 입법을 통해 제도를 정비할 것을 분명히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는 수년째 그 책임을 방기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무시한 채 입법 공백을 방치했고, 그 결과 여성들과 의료진이 법적 불확실성과 형사처벌의 위험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입법 공백을 핑계로 여성과 의료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됩니다. 정부와 국회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즉각 이행하고, 안전한 임신중지와 의료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조속히 마련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