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여성들이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9월 발표한 2019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에 의한 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0.9% 증가했다. 자살률은 2018년부터 2년 연속 증가하고 있는데, 남성 자살률이 여성 자살률보다 2.4배 높지만, 전년 대비 변화상을 보면 남성이 1.4% 감소했지만 여성은 6.7% 증가했다. 여성 자살률은 특히 20대에서 커다란 증가세를 보인다. 20대 여성 자살률은 전년 대비 25.5%나 늘었고 30대에서는 9.3%, 10대에서 8.8% 증가했다. 젊은 여성들에 대한 ‘조용한 학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자살 관련 연구는 노년층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최근 들어 2030 청년 여성들의 자살률에 대한 연구·보고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청년은 행복한가’를 주제로 열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콜로키움에서는, 2030 한국 청년 여성들의 자살률이 일본에서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의 자살사망률과 비슷하며, 이 세대가 전쟁 트라우마만큼의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아 충격을 안긴 바 있다.
2030 청년 여성들의 사회·경제·문화적 삶의 조건이 열악해지면서 20대 여성들의 정신건강 악화 역시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우울증, 불안장애, 스트레스 등으로 병원을 찾은 20대 여성이 증가하고 있으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20대 여성은 4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이는 청년 여성들의 사회적 안전과 경제적 안정이 구조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보호 정책은 물론이고 관심조차 전무하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급증하는 청년 여성의 자살 현상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극심한 입시경쟁과 자유경쟁 체제 속에서 고용, 소득, 교육 수준, 주거상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청년들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성별에 상관없이 뭉뚱그려 설명할 뿐이다.
젊은 여성들에 대한 사회 구조적 열외와 차별, 무관심이 그들에게 벌어지는 ‘조용한 학살’을 방조하고 있다. 정부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청년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경제적 배제, 무관심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취업 현장에서 서울메트로와 가스안전공사, 대한석탄공사 등 공기업은 물론, 하나은행, 신한금융, KB국민은행, IBK투자증권, 킨텍스 등의 사기업에서도 면접 점수를 조작해 여성 지원자를 탈락시키고 있다. 이렇게 채용성차별이라는 구조적 관행과 불법이 자행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로 심화되고 있는 고용 불안으로 청년 여성들의 삶은 더욱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고 있다. 위기 속 해고 1순위는 시간제 비정규직 일자리에 집중된 여성노동자들로, 지난 2월부터 4월 사이 두 달간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 13만 3천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판매직 노동자는 4만 명, 단순 노무 노동자는 3만 9천 명이 실직했다. 같은 기간 20대 여성은 7만 9천 명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특히 20대의 취업을 주도하던 숙박·음식점업, 교육 서비스업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일자리를 잃은 20대 여성들 가운데 24세 이하가 69%(5만 5천 명)를 차지하는 것은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고용 불안 위기에 취약함을 보여준다.
사회복지제도는 결혼제도를 기반으로 한 4인 가족 중심, 남성 가장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결혼이나 취업이라는 제도권 바깥에 있는 청년 여성은 사회복지정책에서 철저히 소외되며, 위기 속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젊은 1인 비혼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추락과 소외현상에 대해 철저한 무시와 무관심을 보여 온 한국 사회와 정부야말로 그들에 대한 ‘조용한 학살’의 방조 책임이 있다. 우리는 정부와 한국사회가 2030세대 청년 여성들의 급증하는 자살 현상을,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성차별적이며 불안전한 사회구조가 원인임을 폭로하여야 한다. 정부는 청년 여성의 소리 없는 죽음을 방조하지 말라.
여성의당은 지난 9월 19일 청년의 날 기념 논평에서 정부와 국회에 청년여성의 위기 해소를 국가적 해결과제로 주문한 바 있다. 여성의당은 이러한 주문이 대답 없는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오지 않도록 채용 성차별 정책 토론회를 비롯하여 청년 여성의 채용과 고용 이후 성차별 방지와 사회적 안전장치 마련을 위해 다각도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도 여성의당은 남성으로 대표되는 청년의 얼굴에 당당히 여성의 권리와 이름을 새겨 넣고, 1인 청년 여성에게 드리워져 있는 빈곤과 죽음의 그림자를 지워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